다수(또는 백수라고 불리우는 집단)의 길(2)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백수에 대한 책임론에는 두가지가 있고 따라서 그 집단의 행동 방향도 나뉘어 질 수 밖에 없다. 개인마다 취사 선택할 수 있겠지만 사회에 책임을 돌리고 행동할 때 보다 긍정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스스로를 자학하면서 백수 계급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 또한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얼핏보면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사회가 발전할 듯도 하다. 하지만 토익 시험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노력에 따른 실력은 그 점수를 볼 때 매년 향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수의 수는 늘어만 가는 상황을 인식한다면 그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그 날은 요원해 보인다. 백수 계급이 움직일 때다. 움직임이 모여 사회가 인식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다. 어떤 행동을 취해야 상황이 변화될까?



두가지 방법이 있다. 단계별로 취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라는 백수의 최대자원을 활용한다면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먼저 백수 계급이 전면에 등장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를 충분히 약화시키는 방법이다. 서비스업 중심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과 백수 계급원의 숫자를 생각해 볼때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적극성의 정도에 따라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우선 소극적인 방법으로 매스미디어, 광고 일체와 절연하는 것이다. 이들의 특성은 향유자가 많을수록 그 힘이 커진다는 것으로 백수 계급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백수도 인간이라 두뇌 용량에 한계가 있기때문에 이런 정보들에 그 일부를 할애하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게다가 이런 미디어들은 백수 계급을 쇠뇌시켜 정당한 불만마저도 형해화 시켜버린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유전적 한계를 뛰어넘기 힘들다면 지하철 무가지나 쓰레기같은 양념들로 가공되기 전의 각 통신사 뉴스를 이용하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겠다.
 
 헤겔에 의하면 역사는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며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노예는 생산으로 주인의 인정은 받지만 이를 소유할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맑스는 사보타지를 제안했다. 사보타지로써 노예가 주인이 되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는 못하나 그나마 이용은 할 수 있는 노예에 비해 백수가 할 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보타지가 불가능한 백수에게 남아있는 가능성은 불매운동 뿐이다. 소비사회를 향한 백수계급의 비폭력불복종운동으로 사회 전반에 강력한 불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불매운동에도 단계가 있다. 생필품은 제외하거나 최저 단계로 제한하고 단계를 높여나가야 한다. 가공의 정도 또는 부가가치의 증가에 따라 단계를 높여나가되 광고가 집중 된 제품을 타겟으로 해야한다. 이런 제품에 강력하게 불매운동을 전개해가면 적어도 매스미디어, 광고사, 광고주라는 히드라의 머리를 내리칠 수 있다. 모든 소비재 중 최고 악질은 저작권이라는 망령이 씌어진 것으로 이는 전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폭리가 심하면서, 소유권 주장의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약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이라는 화수분을 지닌 백수계급이 이에 특히 취약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저작권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판매되기 때문에 다수가 포함된 특정 계급의 단결로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상표권 또한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역시 거부해야 한다. 이들은 매스미디어와 사악한 동거를 하면서 한정된 인간의 머리속에 얼토당토 않은 명품신화를 주입하고 있다. 아마 선인의 눈에만 보인다는 벌거벗은 왕의 옷을 제작했던 상인이 최초의 명품 생산자가 아니었을까? 물론 매스미디어의 부재라는 시대적 상황이 이를 실패로 귀결시키긴 했다.

 이제 백수 계급이 스스로 역량을 강화할 단계이다. 얼핏보면 자학과 이어지는 노력이라는 사회의 요구에 따르는 길로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진실을 바로보는 용기에 있다. 자신이 백수이고 사회불만세력임을 인정할 때 사회를 향해 정당한 불만을 표출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역량을 강화해야 할 지 깨달을 수 있다. 
 
 우선 지성적으로 저들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자학하기 시작하면 사회와의 격차에 비관하고 퇴행적으로 향하기 쉽지만 사실 그 차이는 크지않다. 저들이 원재료 속 양질의 영양을 듬뿍 섭취하는 동안 대다수 백수들은 불량식품마냥 가공된 저질 정보를 먹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매스미디어의 생산자가 권위있는 문헌을 자의적으로 이용해서 의견을 생산하면 백수들은 이 의견에 권위를 부여하고 이차적으로 이용헸다. 이제 과감히 매스미디어와 절연한 뒤 그 권위있는 문헌에 직접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이는 하늘아래 새로운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정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권리를 주장하는 저작권이라는 무도한 권리를 합법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무기라도 비슷해야 저들과 부딛쳐도 승산이 있지 않은가?
 
 남는 시간에 체력을 길러두는 일 역시 백수들의 역량강화에 도움이 된다. 그나마 백수계급이 저들보다 유리한 점 아닌가? 그래야 때가 되었을때 정력적인 행동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하다못해 사회 체계가 붕괴됐을때 살아날 가능성이라도 높아진다. 

 21세기 백수 계급만큼 영양상태가 좋고 박식한 소외집단은 우리나라 역사상 드물다. 설사 더 많이 배우고 신체 건강한 불만세력이 있었을 진 몰라도 그 인구 비율은 새천년 백수계급에 비할 바 못된다. 이제 백수들은 자신의 불만을 명확히 인식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 행동을 개시할 때이다. 대안 세력의 존재야말로 사회 발전을 이끄는 힘 아니던가? 백수들이여 행동하라!      

by parksid | 2008/01/24 16:57 | 고척정경숙(政經塾)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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