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04일
리더십 연구<2>원술편
"젊어서 임협의 기질로 유명했다." -삼국지-
"효렴으로 발탁되어 낭중에 제수되었고, 내외직을 두루 거쳤다." -후한서-
누구에 관한 설명인지 이 정도 기술로는 불명확한가?
"사치에 빠져 제멋대로 행동하며, 세금을 거두는 데 한도가 없어 백성들이 괴로워했다." -삼국지-
"법도를 제정하지 않았으며, 약탈하여 재물을 모았고 사치와 방종함에 끝이 없었다."
"(황제를 칭한 이후)향락과 사치가 점점 심해져서, 수백 명의 후궁들은 모두 수를 놓은 비단 옷을 입는데 사졸들은 헐벗고 굶주려서, 장강과 회수 사이의 지역은 사람의 자취가 끊기고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후한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원술에 관한 서술들이다. 향락과 사치가 심한 성격에 임협의 기질이라는 야누스적 캐릭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뇌리에는 전자만이 남아있다. 자기 가문의 위세만 믿고, 우연히 얻게 된 옥새에 판단력이 흐려저서 황제를 참칭했다가 패망의 길을 걷는 모습이 원술에 관한 내용의 정수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격인 유비 삼형제와의 악연도 그의 인기 하락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다. 그들에 대한 반동탁연합 내에서의 폭언 및 뒷날 조조의 간계로 인한 쌍방의 대립이 그것이다. 고금을 통틀어봐도 재해석의 여지조차 없이 좋은 소리 못 듣는 원술이지만 그 역시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영웅의 반열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치, 향락, 탐학, 무도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원술 타입의 리더를 원하는 시대는 과연 언제인가? 멀지않다. 당신과 내가 살고있는 오늘이 바로 그런 시대이다.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자유, 평등의 원칙이 그 불가침성을 자랑하는 듯한 오늘날 원술같은 존재가 어떤 의의를 갖는지 의심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이끄는 진정한 이념이 공리주의라는데 문제가 있다. 다른말로 바꾸면 경제학이 된다. 잉여의 증가는 선이고 감소는 악이다. 이를 증가시키는 것은 탐욕이고 적어도 비난할 수는 없는 가치이다. 그리고 원술은 이 탐욕의 정수와도 같은 인물이다. CEO 원술, 이야말로 그가 받았어야만 하는 호칭이고, 역사가 효율성을 따졌다면 반드시 있었어야 하는 사건이다.
황제 참칭을 제외하고는(이마저도 재해석의 여지는 충분하다), 도덕적 비난은 받았을 망정 그의 행동이 법적인 제제를 받지는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법망을 피해 주가를 끌어올린 CEO정도가 되지 않을까? 지속가능한 발전을 한다, 중소기업과 상생의 경영을 한다, 사회 환원의 경영을 하겠다,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겠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정치까지 하겠다는 보통의 기업인들에 비해 그의 마인드는 확실히 경쟁력이 있다. 직원들 입장에서도 탐욕, 이 하나만을 추구하는 CEO가 오히려 예측하기 쉬운 법이다. 뚜렷한 목표의식이 형성된 이와같은 상황이라면, 그 기업은 일말의 역량 낭비 없이 이윤추구 하나에만 매진할 수 있다.
원술의 또다른 장점은 그의 고귀함에 있다. 시쳇말로 명품인간이라는 것이다. 능력과 가문, 시대에 따라 중요도가 틀리다. 그의 시대는 능력을 요구했고 결국 이 차이로 조조에게 거꾸러졌다. '상대적 중요도에서 순서 변동이 생겼다.' 수위를 낮춰서 이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사세삼공의 후예, 그것도 원소와는 다르게 적자라는 지위, 후한말 난세에서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던 명성이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상속을 배제하더라도 새사업을 하기에도 유리하고 자금을 모으기도 쉽다. 그 당시 그의 위치는 오늘날 한국으로 치면 재벌 2,3세 쯤 될것이고, 지구촌으로 보면 사우디의 왕위 계승순위 상위에 위치하는 왕자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배경에선 리더십 발휘도 자연스럽다. 게다가 이 명품인간에게 우연히도 최고의 장인으로부터 단 한점 한정 제작된 최고, 최상의 명폼이 들어오게 된다. 바로 옥새다.
옥새란 무엇인가? 이에 불응시 일정한 가치박탈이 전제되는, 바로 권력이다. 천자의 신화가 살아있던 후한말 옥새의 오용으로 원술은 파멸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가진자가 사용하는데 법적인 걸림돌은 없다. 오늘날의 옥새는 무엇일까? 광고산업이나 메스미디어, 혹은 광범위하게 보호되는 저작권일수도 있다. 이것의 소유로 그의 명품 리더십은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시대 CEO로서 그의 리더십은 황제를 칭함으로 완성에 다다르게 된다. 물론 당시에는 참칭이었다. 하지만 기업인의 시각으로는 이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성장이며, 통큰 경영의 전형이고, 대마불사 신화의 시작이다. 대기업 팻말을 달아야 인재가 몰리고, 은행 융자도 쉬워지고, 최악의 경우 국민경제를 볼모로 생존을 도모해 볼 수 있다. 부하들이 황제의 나라 혹은 초거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착각은 최소한 자부심 정도는 불러올 수 있고, 왠만한 세력과는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배짱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바로 CEO의 허풍섞인 리더십에서 나오는 것이다.
황제 참칭은 위험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우리시대 위험한 도전으로 인한 실패 끝에는 파멸만이 남은 것이 아니다. '당신의 경험을 사겠소, 이왕이면 큰 경험을.' 실패했더라도 시도라도 해 본 사람이 다음 기회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큰 모험일 수록 해 본 사람이 적다. 경제학적인 접근으로는 이런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에 관련 시장에서 가치가 높다. 더 좋은 조건으로 다시 무대의 전면에 설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실제로 세계 금융계에서는 적지 않은 일이다. 능력 여하를 떠나서 CEO가 대부분 남의 돈으로 경영하는 만큼 크게 한번 일을 벌릴 배짱이 두둑한 원술은 진정 이시대 경제계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 하겠다.
원술의 리더십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후한말 치자라면 무릇 천자를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그 덕을 두루 펼쳐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을 달성하기에 그의 목표는 협소했다. 그의 탐욕에 질려 떠나간 부하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바로 그 성격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물불 가리지 않고 이윤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 인재는 저절로 모이고, 사회 잉여라는 파이는 커져갈 수 있다.
다음은 원술의 최후에 관한 삼국지의 기술이다.
<"목이 타는 구나. 꿀물 좀 가져오너라." 그러자 수하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원술을 바라보며 말했다. "있는 건 핏물밖에 없는데 어디 가서 꿀물을 구한단 말입니까?" "뭐, 뭐라고? 이, 이놈이ㆍㆍㆍ 누구 안전이라고 감히ㆍㆍㆍ 으아악!" >
파멸의 순간에도 꿀물을 찾는 이 얼마나 드높은 CEO의 기개란 말인가? 상황이 어렵다고 냉수를 마시는 순간 CEO에서 가게 점장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 시대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면 원술은 과감히 분식회계, 대규모 차입경영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탐욕이 남아있는 한 그는 분명히 재기할 것이다.
# by | 2008/02/04 01:23 | 고척정경숙(政經塾)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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