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14일
학교무정 인간유정, 사(師)무정 우(友)유정
타인의 손에 운명을 맡겨 본 일이 있는가? 그의 결정을 기다리며 가슴졸여본 때가 있었는가? 사회적인 사형을 언도받은 적이 있는가? 봉건시대나 왕정시대, 혁명의 시절을 논하자는게 아니다. 21세기 개명천지에 벌어진 한 지식인의 사회적 타살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서울에 소재한 한 사립대에 재학중인 친구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이다. 때는 2007년 말, 취업 및 졸업을 눈앞에 둔 심리학과 00학번 (P)씨는 대학생활을 회고하며 감상에 젖어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과거의 기억들이 새롭다. 전공배정의 실패로 심리학에 입문하던 기억...어느덧 아픔은 사라지고 경영학과 진학에의 집착은 재수강으로만 변했을 뿐이다. 입영통지서보다 무서웠던 두번의 학사경고증...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겠지. 이제 마지막 재수강이자 이번학기 유일하게 신청했던 과목, 경제학 입문과 함께 모든것이 끝이난다. 그렇다. 그는 점수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A는 성공을 뜻한다. 이를 질 받는 사람을 우등생이라 하고, 잘 주는 사람을 의인이라 칭한다. B는 현상유지를 의미한다. 만족과 불만족의 경계에 위치한다. 학문에 뜻이 없다면 부족하지 않은 글자이다. C와 D는 패망이지만 희망이 없는것은 아니다. 반파된 한강철교고 타다만 숭례문이다. 다시 세우면 된다.
어느덧 점수가 표시됐다. P군은 F. 아무리 아름답게 발음해도 미국의 특정지역에서는 기어이 피를 부르고 만다는 F-word의 첫 글자. P군에게는 의미가 새롭다. 학사경고의 누적으로 인한 퇴학.
교수를 찾아가는 그의 머릿속에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덕목들이 떠오른다. 진정한 관용, 인류애의 신천, 박애정신의 구현을 목도하길 기원하면서 교수실 문을 두드린다.
"교수님, 시험 다 보고 숙제 다 냈는데 F는 너무하십니다."
"그래서?"
"C만 주시면 안됩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 저... F면 졸업 못하고 취직 취소됩니다."
"안돼"
"사실 학사경고 누적으로 퇴학될겁니다."
" 안돼"
"재입학까지 2년 걸립니다. 그사이 부모님 얼굴을 어찌 본단 말입니까?"
"안돼"
황제의 엄지는 무거웠고, 이로서 법과 원칙은 바로 세워졌다.
차선책으로 학사관리처에 행정구체를 간청해 보았다. 물음은 같고 대답은 비슷했다.
"규정이 그래서..."
이것으로 지식인 하나가 학생규칙이라는 프레스 기계에 팔을 잃었다. 한눈 팔았던 당사자는 보험금도 못타고 해고되었다. 경제적인 관점으로는 이정도 확율에선 기계개선조차 불필요해 보인다.
졸업 시즌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고, 화려한 졸업과 이처럼 쓸쓸한 경우도 공존한다. 상대평가와 무정한 학교제도 등이 버무려져 많은 수의 학생들에겐 의미를 찾기 힘든 졸업식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학교무정 인간유정, 사(師)무정 우(友)유정 아닌가? 뜻이 통하는 친구들끼리 즐기면서 보낼 떄이다. 지난달 설난(雪亂)와중에 사용되었다는 중국 공산당의 선전문구를 변형시켜 봤다.
# by | 2008/02/14 18:27 | 고척정경숙(政經塾)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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